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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로 읽을 수 있는 한 해

비채에서 새로 번역한 『동물농장』을 보내주셔서 오늘 읽었다. 『동물농장』이야 여러 판본이 많이 나와 있고, 내용도 그럭저럭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읽으니 새롭더라. 이 판본엔 등장인물의 알레고리를 세세하게 설명한 각주가 달려 있고, 뒤에도 상당히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작품 해설을 실었다. 즉, 잘못 해석할 여지가 별로 없는 셈이다. 알레고리인 글에는 실상 이와 같은 해설이 달려 있어야만 작품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자칫 지나치게 친절한 설명은 텍스트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데 장애가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글을 읽을 때도, 쓸 때도 실은 독자가 좀 더 능동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친절하지 않은 설명, 쉽게 읽히지 않는 문장이 나쁘다고만 생각하진 않는 것이다. 알레고리의 경우에도 텍스트를 1차적으로 이해하고, 그 이후의 조사와 분석은 독자의 몫으로 놔두거나 보조적 역할을 하도록 이끌 수도 있다. 하지만 요새 책들은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오해가 없게 하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

단번에 읽기가 아까워 야금야금 읽어가는 책, 『한시미학산책』의 여섯 번째 장은 "즐거운 오독"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장에서는 한시를 오독하는 여러 경우가 나오는데, 이를 두 가지로 묶으면 쉽게 "언어적 오류"와 "문화적 오류"라 이름 붙일 수 있다. 전자는 동음이의어나 띄어쓰기, 생략과 압축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모호성이 발생하는 경우고 후자는 배경지식의 부족이나 차이로 인하여 오독이 발생하는 경우다. 여기 전자에 해당하는 재미있는 예가 하나 있다.

정부원(征婦怨)-정몽주(鄭夢周)

一別年多消息稀(일별년다소식희): 한 번 떠난 뒤로 여러 해 소식 없어
寒垣存沒有誰知(한원존몰유수지): 수자리의 삶과 죽음 그 누가 알랴
今朝始寄寒衣去(금조시기한의거): 오늘 처음 솜옷을 지어서 보내나니
泣送歸時在腹兒(읍송귀시재복아): 울며 보내고 돌아올 때 뱃속에 아기 있었네.

《한국 한시》(민음사, 1991)에 수록된 김달진 번역 옮김, 『한시미학산책』pp. 168-170에서 인용


저자인 정민 선생은 이 시의 마지막 구, "울며 보내고 돌아올 때 뱃속에 아기 있다"의 부분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한다. 하긴 그것도 그럴 것이, 남편이 여러 해 소식이 없는데 어떻게 뱃속에 아기가 있겠는가? 그리하여 어떤 판본에는 남편을 떠나 보낸 여자가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여 아이를 가진 것이라고 해석했다는데,그러면서 옛 남편에게 솜옷을 보내는 여심이라니 이 또한 기기묘묘하다. 그리하여 정민 선생은 이 마지막 구절이 "울며 보내고 돌아올 때 뱃속에 있던 아이 편에요"라고 옮겨야 한다고 한다. 남편 떠날 때 태중에 있던 아이가 벌써 훌쩍 커서 멀리 전쟁터로 얼굴도 모르는 아비를 찾아 떠날 정도의 세월이 흘렀다는 심중을 토로한 한시이다. 이는 한시 특유의 생략적 문법으로 인해 오류가 발생한 경우이다.

이 책에 또한 다른 예로 "의문망 (倚門望)"에 대한 오류도 나와 있다. 오랫동안 이별하여 있다 상봉한 형제의 정을 노래한 시의 마지막 두 구절을 "인하여 문 기대어 바라보자니 (仍懷倚門望) / 기쁨은 스러지고 구슬퍼지네 (喜極輒悲傷)" 로 해석한 판본이 있다고 한다."인하여 문 기대어 바라보자니"가 대체 무슨 뜻인가? 오랜만에 형을 만났는데 어째서 기쁘지 않고 슬퍼지는가? 여기서 "의문망"은 자식이 외출하였을 때 대문에서, 마을 어귀의 문에서 기대어 바라보는 어머니와 모정을 의미한다고 한다. 즉, 형을 만나서 기쁘지만 어머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슬퍼지는 효심을 노래하고 있다. 이 경우에는 배경지식이나 문화적 교양이 부족해서 오류가 발생하였다.

독자, 혹은 해석자로서 이런 오류를 일으켰을 때 부끄러워지는 건 당연하고, 일면 부끄러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독의 행위는 자신의 언어적 감수성이나 배경 교양의 부족을 환하게 폭로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인간에게는 타인의 의중을 읽고자 하는 소통적 욕망이 있다. "난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는지 알고 싶지 않아!"라든가 "이해하지 않아도 좋아!"라고 떳떳하게 말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또한 독자의 의무는 지적, 윤리적 차원에서 저자를 이해하는 것으로 불문화되어 있다. 여기서 오독은 일종의 악덕이 된다. 한편,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이해할 수 없는 텍스트를 두려워하고 동시에 증오하기도 한다. 내게 악덕을 교사하는 사악한 텍스트들이 있다. 그래서 다시 역으로 저자/편집자는 친절한 텍스트를 생산해 낼 의무를 지니기도 한다.

이런 현상 -글쓰기와 편집이 좀 더 친절해지는 - 은 책들이 경쟁해야 할 상대가 다른 책이 아니라, TV, 영화에 이은 온갖 인터넷 매체인 시대가 야기한 것인지도 모른다. 즉, 요새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오독/난독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는데, 후자적 매체의 경우는 범람하는 미디어 비평에 의해서 오해가 곧장 바로잡아지고 대중적으로 공유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책에서도 좀 더 명확한 이해를 요구하는 것이다. 잘못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덧글이 곧 수정을 요구한다. 거기에 더해 우리는 남의 글을 잘못 읽었을 때, 곧장 "너는 난독증이냐"고 공격 당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오역, 오독을 발설할 경우 존경 받을 만한 벗에서 말 섞을 수준도 되지 않는 상대로 순식간에 격하된다.

작년에는 평년에 비해 글을 읽고 감상을 쓰는 일이 좀 더 부담스러웠다. 전문적인 독자가 되면 될수록 오독을 두려워하고, 그를 드러낼 가능성이 있는 글을 쓰는 게 힘들어진다. 가끔은 작가로부터 질문을 받기도 하고, 다른 독자의 의심을 사는 일이 두려웠다. 그렇지만 오늘 나는 평생 내 마음대로 책을 읽어왔다는 것을 자각한다. 내가 저자를 제대로 이해했을 수도 있고, 부족한 지식으로 인해 그를 오해했을 수도 있으며, 알면서도 모른척 내 뜻대로 해석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연정이나 죄악 등 우리의 내밀한 경험들이 모두 다 그렇듯이, 독서 또한 그런 경험의 하나로서 아무리 일반화할 수 있는 특질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만의 것일 수밖에 없다. 텍스트는 본질적으로 저자의 것이며, 그를 읽어나갈 때 독자의 것으로 변한다. 이 과정은 전송(transfer)이 아니라, 변형 (transformation)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독자의 의무를 게을리해서는 안 되지만, 독자가 이해하려는 의무를 다하는 한 그 변형에서 생기는 오독은 즐거운 것임을 상기해야 한다. 『한시미학산책』의 여섯 번째 장이 여러 오독의 사례를 싣고 있어도 결국은 제목이 "즐거운 오독"인 것처럼.『동물농장』 의 해설이 몰이해로 인한 오독의 함정을 피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해도 조금은 나 혼자서 이해해 보겠다는 도전적인 기분이 드는 것처럼. 그래서 길게 썼으나, 이 글은 즉, 새해 결심. 올해도 내 마음대로 읽고 내 마음대로 글을 쓰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전보다 더 부지런히, 이전보다 더 열렬하게.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브리짓 존스의 새해 결심보다도 더 굳은 다짐이다.

by 연연 | 2011/01/02 21:36 | 쓴 글 | 트랙백(4)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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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치니 at 2011/01/03 18:39
끄덕끄덕, 그러네요, 정말.
식상하지만 새해 인사 드립니다. 올해 더 좋은 서평 많이 써주셔서 제가 힌트 많이 얻을 수 있게 되길 바랄게요. :)
Commented by 연연 at 2011/01/04 21:28
예, 새해에도 잘 부탁드려요. :>
Commented at 2011/01/05 20:3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연연 at 2011/01/06 00:29
예, 따뜻한 말 감사드립니다. 언제든지 대화에는 열려 있어요! 편하실 때 말 걸어 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Commented at 2011/01/05 20:40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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