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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이 메시지이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코지 미스터리인 하자키 시리즈 2권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는 제목 그대로 헌책방, 그것도 로맨스 전문 헌책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비록 하청이기는 하지만 편집자로서 일하던 아이자와 마코토는 온갖 불운을 겪고 하자키 시라는 작은 도시까지 휩쓸려 온다. 그녀를 구원 - 혹은 저주라고 해야할지는 모르지만 - 해준 것은 남이 보기엔 딱히 쓸모없었을 독서 취미. 이 도시의 "어제일리어"라는 헌책방에 다다른 그녀는 헌책방 주인이자 마을의 유지인 마에다 베니코 여사로부터 로맨스 테스트를 받고 합격, 자기 뜻과는 그다지 상관 없이 월급 30만엔(!)에 헌책방을 지키는 아르바이트 점원으로 취직하게 된다. 여기서 의문, 도대체 베니코 여사는 뭘 믿고 생면부지인 마코토에게 목숨처럼 아끼는 - 이 표현은 책 후반부까지 읽으면 발견하겠지만 은유가 아니다 - 헌책방을 맡겼을까? 단순히 나와 좋아하는 로맨스에 대한 취향이 같다는 이유로? 실지로 여기 나오는 로맨스 몇 권을 나도 읽기는 했다. 『레베카』라든가, 빅토리아 홀트의 책이라든가, 노라 로버츠라든가. 한때 줄리아 퀸의 리전시 로맨스 팬이기도 했다. 물론 수많은 여학생들처럼 <하이틴>이나 <할리퀸> 같은 카테고리 로맨스도 빼놓지 않고 섭렵했다. 그렇다면 내가 이 책을 읽고 전작인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보다 더 재미있고 짜임새 있다고 생각한 건 이 작품이 좀 더 "내 취향"의 소품들을 배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실지로 코지 미스터리라는 장르 자체가 적잖이 엄격한 구성이라든가 치밀한 인간형 묘사를 강점으로 하고 있다기보다는 공유하는 취향에 기대고 있는 면이 있다. 얼마 전에 컬리너리 미스터리 시리즈를 검토했는데, 그런 장르라면 결론은 언제나 자명하다. "좋아하는 사람은 어찌했든 읽을 것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읽지 않을 것이다."

실로 우리의 취향은 굉장히 강력한 동인이 되며, 판단의 바탕이 된다.아즈마 히로키의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의 1장에서는 오카다 도시오를 인용하며, "오타쿠들은 작품의 메시지보다도 오히려 '취향'을 읽어내는 데 중점을 두며 그 감각은 에도 시대의 이키에 직결되고 있다"고 한다. 이 분석은 단순해 보이긴 해도 흥미로운데, 80년대로부터로 30년이나 흘러온 지금에 와서는 점점 더 취향이 메시지화되는 측면이 강조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사람들은 점점 오타쿠적인 관점을 생활화하고 있다. 아즈마 히로키를 좀 더 읽으면 명백해지겠지만, 우리가 이야기를 읽는 방식은 취향 중심이 되어가고 그에 대해서는 어떤 질문도 허용하지 않는다.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라는 언술이 만연해 있는 현상 밑에는 "우리는 타인의 취향에 대해서는 질문할 수 없으며, 그는 어떤 메시지보다 강력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한참 블로그 리뷰가 유행할 때 사람들은 "설명할 순 없지만 하여튼 좋다"는 표현을 많이 썼다. 언어화할 수 없는 호오의 많은 이유는 개인적 취향에 기인하고 있고, 사람들은 동인, 동호회적인 성격이 있는 커뮤니티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를 포스트모던 적 서사의 진화방향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장르소설, 적어도 장르소설이 소비되는 양식 은 "취향이 메시지"라는 언술에서 자유롭기가 힘들다. 많은 독자들은 자신들이 읽는 책에서 메시지를 발굴해내기보다는 취향의 집합체로 인식하고 있거나 소비되는 대상의 일부로 본다. 비평적 잣대를 달리한다고 해도 문학이라는 프레임 하에서 몇몇 이야기들은 그런 표식을 붙일 수도 없을 만큼 허술한데, 습관적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으며 비교적 잘 짜여진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그 안에 들어있는 메시지 자체는 빈약하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메시지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자문한다. 그것이 우리의 취향이나 생활양식을 대변하기만 한다면? 행동적 양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 메시지보다는 존재적 양식으로 존재하는 듯 보이는 취향이 더욱 강력하다. 실로 "반대 성격끼리 끌린다. (Opposites attract)"라는 표현이 있지만, 많은 심리학적 실험에 의하면 사람들은 같은 취향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가 같은 취향의 사람들, 작품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 호감대로 행동한다고 해도 그다지 억지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역시 한편으로는 취향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도 있다. SNS의 세계에서 명확히 감지할 수 있지만, 같은 취향이 같은 지향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가령 "모테루 오야지"를 꿈꾸는 모 그룹 총수의 아들은 트렌드를 감지하는 그의 문화적 취향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호감도 얻고 하는 모양인데, 그의 지향점이 그를 팔로하는 수많은 사람과 같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취향은 이런 차이를 가리는 가면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취향이 같은 사람이 모이면 즐겁고 행복하지만, 우리가 생산해야 할 메시지는 흐려지고 실종된다. 그러니, 나는 헌책방 어제일리어 같은 서점을 열 수는 있겠지만 처음 보는 아가씨와 내가 취향이 같다고 하여 서점을 맡길 수 있는 그런 성격은 아닌 것이다. 확고한 취향도 좋지만, 메시지 없이는 즐거워지지 않는 기질, 이도 일종의 취향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이부터 생각해 볼 일이다.

by 연연 | 2011/01/04 22:47 | 쓴 글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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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연연 at 2011/01/04 23:04
1. 생각해 보니, 이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에 나오는 아이지마 마코토는 내가 이전에 조금 써놓고 구상했던 소설의 여주인공과 비슷하다. 아...물론 코지 미스터리는 다 인물이 거기서 거기지만...

2. 그래도 헌책방 어제일리어 같은 서점 하나 있으면 좋겠네, 돈은 안 되겠지만. 차도 팔고 빵도 파는 거야.

3. 내 친구가 나보고 "오타쿠계"라고 했을 때 발끈했지만, 아즈마 히로키 읽으니까 어떤 면에서는 맞는 관찰이라는 생각도 든다.

Commented by 소리 at 2011/01/07 00:29
오앗 로맨스 소설 잘 몰라도 이 책 재밌겠어요! 로맨스야 모든 장르의 대부분의 작품의 축이니 로맨스를 모르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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